
받은 분량을 나의 것으로 알기 → 비교에서 자유로워지기 → 오늘 한 사람을 세우기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혼자 볼 때보다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할 때 작게 느낍니다.
누군가는 말을 잘합니다.
누군가는 사람을 잘 이끕니다.
누군가는 성경을 잘 설명합니다.
누군가는 기도할 때도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게 있는 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데.”
“저 사람처럼 해야 하나님께 더 쓰임 받는 것 아닐까?”
그런데 에베소서 4장 7절은 우리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중요한 말은 각 사람에게입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같은 분량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질문이 달라집니다.
“왜 나는 저 사람이 가진 것이 없을까?”
보다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맡기셨을까?”
를 묻게 됩니다.
몸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눈이 손을 보면서
“나는 왜 물건을 잡지 못할까?”
라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발이 입을 보면서
“나는 왜 말을 못할까?”
라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몸에는 서로 다른 지체가 필요합니다.
차이는 부족함의 증거가 아니라 몸을 이루는 방식입니다.
비교가 시작되면 선물이 성적표로 바뀝니다
은사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비교하기 시작하면 선물이 어느 순간 성적표가 됩니다.
“저 사람은 많이 받았다.”
“나는 적게 받았다.”
“저 사람은 중요한 일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 순간 우리는 은사를 주신 분보다 사람들의 평가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문장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셨습니다.
은사의 가치는 사람의 박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주신 분이 누구인지에서 시작합니다.
작아 보이는 역할도 그리스도께서 몸을 위해 맡기신 것이라면 소중합니다.
은사의 목적은 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12절은 은사를 주신 목적을 보여 줍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은사는 나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이 아닙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한 선물입니다.
말을 잘한다면 그 말로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잘 들어 주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정리를 잘한다면 공동체가 더 편하게 움직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챙기는 사람도 몸을 세웁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몸을 세웁니다.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도 몸을 세웁니다.
그래서 은사를 발견하는 질문도 바뀔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가?”
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가진 것으로 누구를 살릴 수 있는가?”
를 묻습니다.
작은 은사가 아니라 아직 사용하지 않은 은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잘 띄는 은사를 크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거나 가르치는 일은 쉽게 보입니다.
하지만 몸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필요합니다.
심장은 밖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장이 멈추면 몸 전체가 멈춥니다.
교회와 공동체도 비슷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
처음 온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사람,
아픈 사람을 기억하고 연락하는 사람,
갈등이 생겼을 때 말을 옮기지 않고 화해를 돕는 사람.
이런 일들은 화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눈에 띄는 몇 사람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각 지체가 자기 분량대로 움직일 때 세워집니다.
성숙은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성장의 기준은 다른 성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비교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습니다.
내 은사가 더 유명해지는 것이 성장의 목표도 아닙니다.
내게 맡겨진 것을 점점 더 사랑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도 성장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은사는 사람을 세우지 못합니다
15절에서 바울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라고 말합니다.
좋은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이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누를 수 있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은사는 자기 자랑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보다 더 깊은 곳에 사랑을 둡니다.
은사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물이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입니다.
믿음으로 내 분량을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주셨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한 가지 자유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아 와야 내가 온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한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에게 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도 필요한 분량을 맡기셨다.”
비교가 감사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은사보다 한 사람을 먼저 봅니다
오늘 이렇게 해 봅니다.
먼저 내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적어 봅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누구를 세울 수 있을까?”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쉽게 설명해 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수고를 알아보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을 말없이 거들 수도 있습니다.
은사는 사용할 때 몸을 세웁니다.
그리고 몸을 세울 때 은사의 의미가 더 분명해집니다.
에베소서 4장 7~16절은 우리에게 더 큰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은혜로 몸을 세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바라보느라, 그리스도께서 내게 주신 것을 작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작은 은혜 하나로 누구를 세울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몸은 특별한 몇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분량대로 사랑 안에서 움직일 때 함께 자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