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3장 1~13절 ②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데 왜 고난은 실패처럼 느껴지는가
하나님의 뜻을 나의 것 알기 → 고난 속 은혜를 체험하기 → 오늘을 살아가기
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계획한 일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길이 열리면 마음도 편합니다.
반대로 어려움이 생기면 질문이 시작됩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렇게 힘든데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에베소서 3장에는 이 질문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울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감옥을 하나님의 일이 실패한 증거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
라고 부릅니다.
같은 감옥을 바라보면서도 해석이 다릅니다.
바울은 감옥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은혜를 먼저 보았습니다
3장 2절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이 맡겨졌다고 말합니다.
7절에서도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난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감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옥보다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맡기셨는가?”
를 바라봅니다.
이것이 믿음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믿음은 어려운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큰 문장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의 뜻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길이 열려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일이 잘되어야 한다.
하지만 바울의 삶을 보면 그런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고, 약속에 함께 참여한다는 하나님의 비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다가 갇혔습니다.
그렇다면 감옥은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일까요?
바울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에서도 편지를 쓰며 그 하나님의 뜻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울의 몸은 묶었지만 복음의 뜻까지 묶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왜 고난을 실패라고 느낄까요?
고난을 실패처럼 느끼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내가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
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되면 하나님의 뜻이고,
막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3장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바울이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서로 멀리 있던 사람들이 함께 한 몸이 되며,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그 큰 하나님의 일 안에서 바라봅니다.
그래서 질문도 달라집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만 묻지 않고,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루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
를 묻게 됩니다.
고난보다 큰 하나님의 이야기를 믿습니다
11절에서 바울은 이 모든 일이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
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상황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바울의 성공보다 먼저 있었고,
바울의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보다도 먼저 있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나의 것으로 안다는 것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모든 이유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 계획이 깨졌다고 하나님의 계획까지 깨진 것은 아닙니다.
내 길이 막혔다고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고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고난 가운데 은혜를 체험한다는 것은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힘든 일을 만나도 항상 웃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슬플 수 있습니다.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라집니다.
고난이 내 삶의 마지막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실패했다.”
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로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도 무엇을 이루고 계실까?”
그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다른 사람의 영광과 연결합니다
13절에서 바울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우리는 고난을 개인의 손해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일과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자신의 삶을 자기 한 사람 안에만 가두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견디는 어려움이 누군가를 살리는 데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실패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나온 아픔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은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난의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은 고난조차 자신의 은혜 밖에 버려 두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3장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자신의 다양한 지혜를 드러내신다고 말합니다.
그 교회를 이루는 사람 가운데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그림입니다.
교회는 모든 일이 잘 풀린 사람들의 전시장이 아닙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공동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이며 함께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하다고 해서 몸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실패라고 이름 붙인 일을 다시 바라봅니다
오늘 내가 실패라고 부르고 있는 일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기대했던 관계가 깨진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아직 달라지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을 억지로 좋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질문 하나를 바꾸어 봅니다.
“왜 실패했을까?”
에서 멈추지 않고,
“이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은 무엇일까?”
를 묻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
다시 한 번 정직하게 시도하는 일,
도움을 요청하는 일,
기도하며 기다리는 일,
혹은 멈추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이 없어져야만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받은 은혜를 따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계속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13절은 우리에게 고난 없는 길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난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자신의 지혜를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그 뜻은 우리의 형편보다 먼저, 영원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려움을 하나님의 일이 실패했다는 증거로만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고 계실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까?
고난이 하나님의 뜻을 지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믿음은 고난이 사라진 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더 큰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음을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