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자녀라면 삶에서는 무엇이 달라질까?|에베소서 5장 1~14절

에베소서 5장 1~14절 ① 사랑받는 자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본받는가
사랑받음·사랑의 걸음·빛·열매 — 받은 사랑이 삶의 방향이 됩니다
에베소서 4장 마지막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리고 5장 1절은 바로 그 말씀을 이어받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여기에서 순서를 놓치면 안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잘 본받으면 사랑받는 자녀가 된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사랑받는 자녀라고 부릅니다.
그다음
하나님을 본받으라
고 말합니다.
삶의 변화는 다시 은혜에서 시작합니다.
첫 번째 흐름,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5장 1절에서 중요한 표현은
τέκνα ἀγαπητά
테크나 아가페타
곧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바울은 성도에게 먼저 신분을 확인시켜 줍니다.
너희는 사랑을 얻어 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는 자녀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받는 삶도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아버지께 사랑받은 자녀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흐름, 사랑 가운데 걸어갑니다
2절에는 에베소서의 중요한 동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περιπατεῖτε
페리파테이테
“걸어가라”, 곧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여기서도 삶의 기준은 나의 감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사랑을 막연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단순히 좋은 감정을 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방향입니다.
세 번째 흐름, 사랑과 욕망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3절부터 바울은 갑자기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말합니다.
왜 사랑을 말하다가 욕망을 이야기할까요?
사랑과 욕망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방향은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욕망은
상대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탐욕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나에게 가져오려는 방향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는 자녀의 삶은
“내가 무엇을 더 가질 수 있는가?”
보다
“내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는가?”
를 묻게 됩니다.
네 번째 흐름, 입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4절에서는 말에 관한 내용이 다시 등장합니다.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자리에 무엇을 놓습니까?
감사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투의 변화가 아닙니다.
마음이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욕망은 늘 없는 것을 봅니다.
“나는 이것도 부족하다.”
“저것도 더 필요하다.”
그러나 감사는 이미 받은 것을 봅니다.
에베소서 1장부터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를 바라보던 사람이 이제 입으로도 그 은혜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다섯 번째 흐름,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6~7절에서 바울은 헛된 말에 속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지 말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미워하거나 세상과 완전히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이 내 삶의 방향을 끌고 가고 있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함께 걷는 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반복해서 듣는 말,
반복해서 보는 것,
반복해서 가까이하는 욕망이 마음의 방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사람은 단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만 고민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길을 따라 걷고 있는가?”
를 살펴봅니다.
여섯 번째 흐름,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습니다
8절에서 문장이 크게 바뀝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바울은
“너희가 어둠 속에 있었다”
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어둠이었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다”
라고 합니다.
이 변화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이루어진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또다시 같은 순서입니다.
빛이 되기 위해 걸어라
가 아니라,
주 안에서 이미 빛이 되었으니 빛의 자녀처럼 걸어라
입니다.
일곱 번째 흐름, 빛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9절은 빛의 열매를 세 가지로 말합니다.
모든 착함
의로움
진실함
빛은 말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삶에서 보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착함이 나타납니다.
선택할 때 의로움이 나타납니다.
말과 행동에서 진실함이 나타납니다.
열매는 나무가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매다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열매도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빛의 자녀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결과입니다.
여덟 번째 흐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합니다
10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신앙은 규칙표를 하나 받아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황마다 묻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 욕망이 원하는 것만 묻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만 묻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은 삶의 판단 기준을 하나님께 다시 가져갑니다.
아홉 번째 흐름, 빛은 어둠을 드러냅니다
11절 이후에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드러내라고 말합니다.
13절에는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빛이 비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마음속 욕망도 보입니다.
잘못된 생각도 보입니다.
숨기고 있던 행동도 보입니다.
그러나 빛이 드러내는 목적은 단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14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빛은 드러낼 뿐 아니라 깨우고 살리는 방향으로 갑니다.
문장의 길을 한눈에 따라가 봅니다
에베소서 5장 1~14절의 흐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받습니다
↓
그리스도처럼 사랑 가운데 걸어갑니다
↓
욕망과 탐욕의 길을 벗어납니다
↓
감사의 말을 합니다
↓
우리는 주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빛의 자녀처럼 걸어갑니다
↓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합니다
↓
그리고
빛 가운데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새로운 삶으로 깨어납니다
앞에서는 계속 같은 원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주 안에서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사랑 가운데 걷고 빛의 자녀처럼 살아갑니다.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사랑받는 자녀로서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오늘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선택과 관계 가운데 빛의 열매가 나타나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빛의 자녀가 된 사람은 빛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빛이 오늘의 삶을 통해 나타나도록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다음 2편에서는 같은 에베소서 5장 1~14절을 다시 읽으며,
「사랑받는 자녀인데 왜 나는 여전히 욕망과 사람의 인정에 끌리는가」
라는 질문을 따라가겠습니다.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나의 것으로 알고, 욕망과 인정욕구가 올라올 때 어떻게 빛의 자녀로 살아갈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