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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을 입었다면 말과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에베소서 4장 25~32절

말씀쉼터 2026. 10. 2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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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25~32절 ① 새사람의 삶은 어디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가

 

진실한 말·분노·일·세우는 말·용서 — 새사람이 관계 속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베소서 4장 17~24절에서 바울은 옛사람을 벗고 마음이 새로워져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새사람을 입었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이 달라진다는 뜻일까요?

25절부터 바울은 아주 일상적인 자리로 내려옵니다.

말하는 방식,

화내는 방식,

일하는 방식,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새사람은 마음속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변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합니다

25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여기에서 ‘거짓’은 ψεῦδος(프슈도스), ‘참된 것’은 ἀλήθεια(알레데이아)입니다.

왜 진실을 말해야 할까요?

바울은 단순히

“거짓말은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곧이어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속이면 결국 몸 전체가 다칩니다.

그래서 진실한 말은 단순한 개인 도덕이 아니라 한 몸을 살리는 행동입니다.

두 번째 변화, 분노가 죄의 길이 되지 않게 합니다

26절은 조금 의외의 말로 시작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바울은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생기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잘못을 보면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가 나를 끌고 어디로 가느냐입니다.

분노가 오래 머물면 상대를 심판하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나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바울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고 말합니다.

분노를 마음에 오래 붙들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변화, 빼앗던 손이 나누는 손으로 바뀝니다

28절에서는 도둑질하던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도둑질하지 말라”

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그리고 목적까지 말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옛사람은

남의 것을 가져옵니다.

새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줍니다.

복음은 단지 나쁜 행동을 멈추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뀌게 합니다.

네 번째 변화, 말이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고 세웁니다

29절에는 매우 현실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더러운’이라는 말에는 σαπρός(사프로스)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썩은 것, 부패한 것을 뜻합니다.

썩은 음식이 몸을 상하게 하듯이 말도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나쁜 말을 하지 말라”

고 끝내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새사람의 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말하기 전에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말은 이 사람을 세우는가?”

를 묻습니다.

다섯 번째 변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습니다

30절에는 갑자기 성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왜 말과 분노와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성령이 나올까요?

앞에서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치심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성령께서 우리를 한 몸으로 하나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단순히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 하나 됨을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성령은 우리의 관계와 무관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속에서도 하나 됨을 이루십니다.

여섯 번째 변화, 마음속에 쌓인 것을 버립니다

31절은 버려야 할 것들을 한꺼번에 나열합니다.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

모든 악의

이것은 단지 입 밖으로 나온 행동만이 아닙니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마음의 흐름 전체입니다.

상처가 쌓이면 악독이 되고,

악독이 분노를 키우고,

분노가 말로 나오며,

그 말이 다시 관계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 행동 하나만 고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흐름 자체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변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신 방식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32절이 이 문단의 결론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여기에서 ‘용서하다’에는 χαρίζομαι(카리조마이)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은혜를 뜻하는 χάρις(카리스)와 연결된 말입니다.

용서는 내가 상대보다 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문장의 순서를 잘 봐야 합니다.

네가 먼저 용서하면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신다

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를 용서하셨다

↓

그러므로

너도 서로 용서하라

입니다.

에베소서의 흐름은 여기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받은 은혜에 어울리게 살아갑니다.

문장의 길을 한눈에 따라가 봅니다

에베소서 4장 25~32절은 이렇게 흐릅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합니다

↓

분노를 죄의 길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

빼앗던 손으로 일하고 나눕니다

↓

썩은 말 대신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합니다

↓

성령이 이루신 하나 됨을 소중히 여깁니다

↓

악독과 분노와 비방을 버립니다

↓

그리고

친절과 긍휼과 용서로 서로를 대합니다

왜 이렇게 살아갑니까?

가장 마지막 문장이 그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새사람은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특별한 종교적 모습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말이 달라집니다.

화가 났을 때 반응이 달라집니다.

일하는 이유가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기 시작합니다.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할지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용서할 이유를 내 안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용서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새사람을 입었다고 믿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여전히 옛사람의 말과 분노로 반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오늘 내 말 하나, 손의 수고 하나, 용서 하나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누구에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새사람의 삶은 거대한 일에서 먼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한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2편에서는 같은 에베소서 4장 25~32절을 다시 읽으며,

「용서받은 것을 아는데 왜 나는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운가」

라는 질문을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믿음으로 나의 것으로 알고, 분노와 상처를 어떻게 다루며 관계 속에서 은혜를 흘려보낼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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