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하라는데 왜 나는 감정과 환경에 더 쉽게 흔들릴까?|에베소서 5장 15~21절

무엇이 나를 채우는가 → 성령의 다스림을 받기 → 감사와 관계로 살아가기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실제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을 끌고 가는 것은 성령보다 다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올라갑니다.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립니다.
걱정스러운 일이 생기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계속 생각합니다.
화가 나면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반복해서 떠올립니다.
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데 왜 나는 감정과 환경에 이렇게 쉽게 끌리는가?”
에베소서 5장 18절은 그 질문 앞에서 먼저 한 가지를 묻게 합니다.
무엇이 지금 나를 채우고 있는가?
사람은 자신을 채우는 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과 성령을 함께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음주의 문제만을 다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엇이 사람을 지배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술에 취하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술의 영향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려움으로 가득하면 모든 상황을 두려움으로 해석합니다.
분노로 가득하면 사람의 말 하나도 공격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면 사람의 반응이 하루의 기분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마음을 채우느냐에 따라 같은 현실도 다르게 바라봅니다.
성령 충만은 강한 감정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특별한 감정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거나,
눈물이 나거나,
강한 확신이 생기는 경험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5장에서 성령 충만의 결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찬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로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합니다.
성령 충만은 감정이 얼마나 강한가보다 삶의 중심이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와 연결됩니다.
감정이 흔들려도 성령의 말씀을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어렵더라도 감사할 근거를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감정은 사실을 알려 주지만 마지막 판단은 아닙니다
슬프다면 실제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화가 난다면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안하다면 내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감정을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언제나 현실의 최종 판단은 아닙니다.
“불안하다.”
와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는 같은 문장이 아닙니다.
“화가 난다.”
와
“그러므로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도 같은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으로 방향을 다시 잡는 삶입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합니다.
둘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아무 방향으로나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을 정돈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감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 순간 마음의 방향이 조금씩 바뀝니다.
감사는 환경에 끌려가던 마음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20절은
“범사에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고 말합니다.
감사는 모든 상황이 좋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힘든 일을 좋은 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환경만 바라보면 없는 것이 보입니다.
문제가 보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다시 보게 합니다.
감사는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행동입니다.
성령 충만은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21절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납니다.
내 말만 주장해야 한다는 마음이 줄어듭니다.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도 상대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계의 중심이
“누가 더 높은가?”
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어떻게 경외할 것인가?”
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충만해져 있는가
성령 충만을 구하기 전에 오늘 마음을 한번 살펴봅니다.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걱정입니까?
사람의 평가입니까?
돈입니까?
분노입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그것을 억지로 지우려고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그대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 이 문제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크게 보게 해 주세요.”
“내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오늘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해 주세요.”
성령 충만은 내 마음을 비운 뒤 특별한 무엇을 기다리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이 내 생각과 감정과 선택의 중심을 차지하게 하는 삶입니다.
오늘은 한 가지 반응을 바꾸어 봅니다
오늘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 하나를 찾아봅니다.
바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이 감정 뒤에는 어떤 생각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게 하는가?
그다음 작은 행동 하나를 선택합니다.
화를 바로 말로 쏟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걱정 대신 오늘 할 일을 하나 할 수 있습니다.
비교하던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불평 대신 감사 한 가지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선택 속에서도 성령의 다스림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5~21절은 성령 충만을 특별한 사람만 경험하는 사건으로 두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
오늘의 감사,
오늘의 관계,
오늘의 선택 속으로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성령보다 어떤 감정과 환경의 지배를 더 많이 받고 있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그 자리에서 성령의 다스림을 믿으며 오늘 한 가지 반응을 다르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성령 충만은 감정이 사라지는 삶이 아닙니다.
감정과 환경보다 더 깊은 곳에서 성령께서 내 삶의 방향을 잡아 가시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