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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7~10절 ② 용서받은 사람은 왜 과거에 계속 붙잡혀 사는가

말씀쉼터 2026. 8.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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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용서를 나의 것 알기 → 회복을 체험하기 → 오늘을 살아가기

사람에게는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 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미 끝난 일인데도 그때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잘못했던 선택을 다시 생각합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자신을 책망합니다.

누군가가 이미 용서했다고 말했는데도 마음속에서는 그 일이 끝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비슷합니다.

성경은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실패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용서하셨을까?”

에베소서 1장 7절은 그 질문에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보여 줍니다.

용서는 내가 느끼기 전에 먼저 이루어진 일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범죄의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에서 ‘용서’를 뜻하는 ἄφεσις(아페시스)에는 놓아 주다, 풀어 주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용서의 근거입니다.

내가 충분히 후회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본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의 근거는 나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죄책감을 강하게 느낀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피가 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마음이 편하다고 해서 용서가 더 확실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내 감정보다 먼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까요?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아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다.”

그런데 마음에서는 여전히 말합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일을 한 사람이야.”

과거의 잘못이 어느 순간 나의 행동에 대한 기억을 넘어 나의 이름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실망시킨 사람이다.”

“나는 다시 잘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우리의 이름을 과거의 실패에서 찾지 않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으며, 이제는 그의 피로 구속받고 용서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과거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주인을 바꿉니다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과거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으로 생긴 결과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할 수도 있고, 깨진 관계를 천천히 회복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가 더 이상 나의 오늘을 결정하는 주인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과거를 바라볼 때,

“나는 왜 그런 사람이었을까?”

에서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나를 다시 자기에게로 데려오셨다.”

라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자리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용서에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에베소서 1장 7~10절의 흐름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은

구속 → 용서

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결국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잘못을 지워 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깨어진 것을 다시 연결하고, 흩어진 것을 다시 모으시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은 사람은 과거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복 안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과거를 바라보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과거의 실수가 떠오를 때마다 자신을 다시 심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에베소서의 문장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구속받았습니다.

용서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마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는 미래의 기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을 바라보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과하면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돌아보면서도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은혜는 잘못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다른 사람의 과거를 붙잡고 있는 마음도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도 영향을 줍니다.

나는 용서를 받았으면서도 누군가를 그의 과거 한 장면에 붙잡아 두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며 그 사람이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닫아 버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용서가 모든 관계를 즉시 이전처럼 돌려놓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처가 큰 관계에는 거리와 지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를 그의 영원한 이름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과거의 문장 하나를 바꾸어 봅니다

오늘 나를 붙잡고 있는 과거의 문장 하나를 찾아봅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 문장에서 멈추지 않고 이어 봅니다.

“나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버리지 않으셨다.”

“나는 죄를 지었다.”

에서 멈추지 않고,

“나는 죄를 지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과 용서를 받았다.”

라고 이어 봅니다.

믿음은 과거를 삭제하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마지막 문장을 하나님이 이루신 일로 다시 쓰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10절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속하시고, 용서하시고, 자신의 뜻을 보여 주시며, 흩어진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모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신 일을 나는 아직도 붙잡고 나 자신을 심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모으고 계신 삶을, 나는 오늘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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