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4장 25~32절 ② 용서받은 것을 아는데 왜 나는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운가
받은 용서를 나의 것 알기 → 상처와 분노를 다루기 → 관계에 은혜를 흘려보내기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말을 잘 압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막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오래 남습니다.
그때의 표정이 생각납니다.
“나는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을까?”
하는 마음도 올라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과 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다른 문제야.”
에베소서 4장 32절은 바로 그 두 가지를 연결합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는 내가 먼저 시작하는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너희가 먼저 잘 용서하면 하나님도 너희를 용서하신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순서는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서로 용서하라
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전체에서 계속 보아 온 흐름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에 어울리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내가 마음속에서 억지로 만들어 내야 하는 힘이 아닙니다.
먼저
“나는 어떤 용서를 받은 사람인가?”
를 다시 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왜 상처는 쉽게 놓이지 않을까요?
상처에는 실제 사건이 있습니다.
내가 무시당했을 수 있습니다.
배신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말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말할 때 상처 자체를 작게 만들면 안 됩니다.
“별일 아니었어.”
라고 억지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잘못은 잘못입니다.
상처는 상처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 외에 다른 것이 마음에 붙을 수 있습니다.
판결입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언젠가 똑같이 당해야 해.”
상처 위에 이런 판단이 계속 쌓이면 분노가 마음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31절에서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과 모든 악의
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상처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붙잡은 마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어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용서하면 그 사람의 잘못이 괜찮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용서는 잘못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없었던 일처럼 취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죄는 실제였고,
그 죄의 문제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란
“당신이 한 일은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한 잘못을 내가 계속 붙잡고 심판하며 살아가지는 않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 가깝습니다.
용서와 다시 가까워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반드시 관계를 이전처럼 돌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관계라면 거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신뢰가 깨졌다면 다시 쌓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서와 경계는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서 상대를 계속 미워하며 그 사람에게 묶여 있느냐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다시 맡기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분노는 오래 붙잡을수록 나를 묶습니다
26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이 말씀은 화를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분노를 마음의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상처받았기 때문에 분노합니다.
그런데 오래 지나면 분노 자체가 나를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이야기가 나오기만 해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 오늘의 기분을 결정합니다.
상대는 내 앞에 없는데도 내 마음은 계속 그 사람과 싸웁니다.
그때 용서는 상대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나를 과거의 상처에서 풀어 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받은 용서를 기억하면 시선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한다고 해서 상처가 즉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위치가 조금 달라집니다.
나는 완벽해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이 아닙니다.
나 역시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잘못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알수록
“나는 옳고 저 사람만 틀렸다.”
는 자리에서 조금 내려올 수 있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분명하게 보면서도,
나도 은혜로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용서는 한 번의 감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상처는 한 번 기도했다고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내일 다시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용서하지 못했나 보다.”
라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처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이 한 일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미워하며 살지는 않겠습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 선택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한 번의 강한 감정보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같은 방향을 다시 선택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새사람의 말은 상처를 다시 키우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하라
고 말합니다.
상처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계속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억울함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사람을 비방하면 상처가 마음에서 계속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것과 비방은 다릅니다.
도움을 받을 사람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깎아내리며 내 마음의 분노를 계속 키우는 말은 나 자신도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새사람은 말에서도 은혜의 방향을 선택합니다.
오늘은 용서해야 할 사람보다 먼저 받은 용서를 기억합니다
오늘 상처 준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부터 생각하지 말고 먼저 나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나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시작할 자리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잠시 바라본 뒤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 아직 아픕니다.”
“그 사람이 한 일이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분노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 안에서 이 사람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오늘 당장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분노를 붙드는 방향에서 은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32절의 마지막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진실한 말도,
분노를 다스리는 것도,
사람을 세우는 말도,
친절과 긍휼도
결국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잘못을 붙잡고 그 사람을 계속 심판하면서, 나 자신도 그 사건에 묶여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 그 사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을까요?
용서는 잘못을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더 큰 은혜를 바라보며, 상처가 내 오늘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