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5장 1~14절 ② 사랑받는 자녀인데 왜 나는 여전히 욕망과 인정에 끌리는가
사랑받음을 알기 → 욕망을 분별하기 →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칭찬에는 여전히 마음이 움직입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하면 기쁩니다.
무시당하면 마음이 작아집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면 나도 갖고 싶고, 내가 가진 것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것을 아는데 왜 나는 여전히 사람의 인정과 욕망에 끌릴까?”
에베소서 5장은 그 문제를 정죄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이렇게 부릅니다.
“사랑을 받는 자녀.”
이것이 출발점입니다.
욕망을 이기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1절은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고 말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잘 본받아야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사람의 인정이 절실해질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말이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야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내가 더 많이 가져야 안전하다.”
“저 사람보다 잘해야 가치가 있다.”
그러나 복음은 다른 사실을 먼저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믿음은 그 사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랑과 욕망은 방향이 다릅니다
2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방향은 밖으로 갑니다.
상대를 살리기 위해 줍니다.
그러나 욕망은 반대로 움직입니다.
내가 얻고 싶어 합니다.
내가 채워지고 싶어 합니다.
사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말한 바로 뒤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말합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사랑은 내어 주고, 욕망은 끌어옵니다.
탐욕은 물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탐욕을 돈이나 물건을 지나치게 원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정도 탐욕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 칭찬받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 자체가 모두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내 가치를 결정할 때입니다.
칭찬을 받으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칭찬이 없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의 인정은 선물이 아니라 생명줄이 됩니다.
하지만 사랑받는 자녀에게는 이미 더 깊은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감사는 욕망의 방향을 바꿉니다
4절에서 바울은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을 버리고 그 자리에 감사를 놓습니다.
감사는 단순한 예절이 아닙니다.
욕망을 다루는 중요한 방향입니다.
욕망은 계속 말합니다.
“없다.”
“더 필요하다.”
“저 사람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감사는 묻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내게 무엇을 주셨는가?”
에베소서 1장부터 돌아보면 많은 것이 보입니다.
선택하셨습니다.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구속하셨습니다.
용서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인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감사는 없는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다시 보는 일입니다.
빛의 자녀는 욕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8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욕망이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이 올라올 때 그것을 빛 앞에 가져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지금 왜 이 사람의 인정이 이렇게 필요한가?”
“왜 저 사람이 가진 것이 이렇게 부러운가?”
“내가 이것을 얻으면 무엇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가?”
숨기지 않고 바라봅니다.
빛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드러내는 목적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인정은 나쁘지 않지만 나의 이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칭찬을 받으면 기쁠 수 있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칭찬받았다고 더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일 비판받았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평가는 계속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그 힘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작은 선택에서 나타납니다
9절은 빛의 열매를 말합니다.
착함
의로움
진실함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하루 종일 특별한 종교적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욕망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순간에 다른 사람을 생각합니다.
유리한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진실을 선택합니다.
나에게만 좋은 길보다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선행보다 보이지 않아도 좋은 일을 합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빛의 열매가 됩니다.
오늘은 인정받고 싶은 순간 하나를 살펴봅니다
오늘 사람의 반응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면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얻어야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는가?”
칭찬입니까?
돈입니까?
성과입니까?
사람의 관심입니까?
그것을 발견했다면 억지로 없애려고 하기보다 먼저 에베소서의 첫 문장을 기억합니다.
“나는 사랑받는 자녀다.”
그리고 오늘 받은 은혜 하나를 감사해 봅니다.
그다음 작은 선택 하나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 하나를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비교하던 사람을 축복할 수도 있습니다.
진실한 말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받는 자녀가 빛 가운데 걷는 작은 시작입니다.
에베소서 5장 1~14절은 욕망을 가진 사람에게 단순히
“욕망하지 마라”
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더 큰 사실을 보여 줍니다.
너는 사랑받는 자녀다.
너는 주 안에서 빛이다.
그러므로 사랑 가운데 걸으십시오.
빛의 자녀처럼 걸으십시오.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사람의 인정이나 무엇을 더 가져야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하나님께 이미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 무엇을 얻으려 하기보다 무엇을 사랑으로 내어 줄 수 있을까요?
빛의 자녀는 욕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욕망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따라 다시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