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으로 나의 것 알기 → 체험되는 은혜 → 오늘의 삶
사람은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일을 잘하면 인정받을 것 같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으면 안심할 것 같고, 신앙생활도 잘해야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어느새 질문이 이렇게 바뀝니다.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잘하고 있는가?”
그런데 에베소서 1장 3~6절의 문장을 다시 따라가 보면 바울은 우리의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본문에서 먼저 움직이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면, 나는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할까요?
선택은 내가 얻어 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의 순서입니다.
내가 잘 살아서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우리의 행동보다 훨씬 앞선 자리로 갑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나의 성공도 실패도 아직 없던 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내가 선택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기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를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꿉니다.
자녀는 자녀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5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중요한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순종해서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매일 자녀 자격시험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실수했다고 해서 갑자기 남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자녀는 자라야 합니다. 잘못된 행동도 고쳐야 하고, 아버지의 뜻을 배워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성장의 출발점은
“나는 사랑받는 자녀인가?”
라는 불안이 아니라
“나는 사랑받는 자녀이다”
라는 관계입니다.
에베소서가 삶의 명령을 4장 이후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받았는지를 충분히 보여 준 뒤에 어떻게 살아갈지를 말합니다.
은혜를 나의 것으로 안다는 것
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말합니다.
은혜는 내가 하나님에게 보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시다.”
라고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도 주어졌다.”
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실수한 날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거나, 계획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신앙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시 나는 안 돼.”
“하나님도 나를 실망스럽게 보실 거야.”
그러나 에베소서의 문장은 내 실패보다 먼저 있었던 하나님의 행동을 기억하게 합니다.
선택하셨습니다.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믿음은 실패를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증명하려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칭찬받으면 기쁘고, 무시당하면 속상합니다.
문제는 사람의 인정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으면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까지 흔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인정이 나를 지배하는 힘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칭찬을 받아도 내가 더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을 받아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과장할 필요가 조금씩 줄어듭니다.
실수를 감출 필요도 줄어듭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고, 잘못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자신의 자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과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바꿉니다
내가 은혜로 서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나는 잘했는데 왜 저 사람은 저렇지?”
라는 마음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한 번의 실패로 존재 전체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다시 시작할 자리를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지 찾아봅니다
오늘 하루 자신을 증명하려고 힘을 주고 있는 자리를 하나 찾아봅니다.
직장에서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일 수도 있습니다.
SNS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잠시 에베소서 1장의 문장을 기억해 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한 다음 한 가지를 내려놓아 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말 하나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수를 변명하기보다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아주 작은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훈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은혜입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받았기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자녀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아버지의 길을 배워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이미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면, 나는 오늘 누구 앞에서 무엇을 더 증명하려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증명을 하나 내려놓는다면, 나는 오늘 조금 더 자유롭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