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2장 11~22절 ① 멀리 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로 만드셨는가
가까이 하심·화평·한 새 사람·한 성전 — 문장의 흐름 따라 읽기
에베소서 2장 1~10절에서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한 가지 더 큰 문제를 바라봅니다.
살아난 사람들이 서로 갈라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11절부터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오래된 거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살리실 뿐 아니라, 서로 멀리 있던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로 만드시는지 보여 줍니다.
첫 번째 모습, 우리는 멀리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에게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한때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공동체 밖에 있었으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도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상태를 아주 강하게 표현합니다.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였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문제는 단순히 종교적인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에서 문장의 방향이 바뀝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울은 말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앞에서는 멀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구속과 용서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멀리 있던 사람을 가까이 데려옵니다.
문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멀리 있었습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
그의 피로
↓
가까워졌습니다
사람이 거리를 줄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까이 하셨습니다.
두 번째 모습,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화평입니다
14절은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화평에 대해 가르치셨다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화평이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그분이 둘을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
고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담이 있습니다.
민족,
문화,
배경,
종교적 전통,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이 서로를 갈라놓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화평을 서로 조금 양보하는 정도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 자체를 허무시는 일로 설명합니다.
세 번째 모습, 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15절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이 더 분명해집니다.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흡수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유대인이 이방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둘이 한 새 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중심이 생긴 것입니다.
과거에는
“나는 누구 편인가?”
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가 중심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억지로 붙여 놓는 분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새로운 하나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네 번째 모습,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죽이셨습니다
16절은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소멸하셨다”
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만 회복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대까지 다룹니다.
그래서 바울의 문장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이어집니다.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동시에 서로 원수가 되었던 관계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드십니다.
십자가는 개인의 죄 사함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관계를 다시 이어 주는 사건이 됩니다.
다섯 번째 모습, 우리는 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18절에서 바울은 매우 아름다운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
한 성령 안에서
↓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도
같은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가 더 가까운 사람인지 경쟁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두 같은 은혜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여섯 번째 모습, 낯선 사람이 가족이 됩니다
19절부터 바울은 사람들의 새로운 신분을 설명합니다.
이제는
외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대신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워졌고,
낯선 사람이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혼자 구원받아 혼자 살아가는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만듭니다.
마지막에는 성전이 등장합니다
20~22절에서 바울은 공동체를 하나의 건물에 비유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고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자라갑니다.
마침내
주 안에서 성전이 됩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성전이 돌로 된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서로 달랐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가 됩니다.
문장의 길을 한눈에 따라가 봅니다
에베소서 2장 11~22절의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멀리 있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
그리스도가 화평이 되셨습니다
↓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
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없애셨습니다
↓
한 성령 안에서 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서로 연결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십니다
이 문단에서도 중심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이 문장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실 뿐 아니라 연결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1~10절에서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11~22절에서는 살아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나와 하나님”
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와 하나님,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까지 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벽을 쌓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무신 담을 다시 세우지 않는 사람으로 부름받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허무신 담을 나는 사람 사이에서 다시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과 한 성전으로 세우시는 사람을, 나는 여전히 ‘나와 다른 사람’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음 2편에서는 같은 본문을 다시 읽으며,
「하나님이 한 가족으로 만드셨는데 왜 우리는 서로 벽을 세우는가」
라는 질문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화평을 믿음으로 나의 것으로 알고, 관계 속에서 받은 화평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